러시아 고전산책 03 나의 인생(tab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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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러시아 고전산책 03 나의 인생(tablet)

‘노동’과 ‘결혼’을 통한 인생의 의미 찾기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가 남긴 ‘인생’에 대한 두 편의 중편소설을 한데 엮은 『나의 인생』은 작가정신에서 선보이는 러시아 고전 산책 세 번째 작품이다. 이 책은 체호프의 중편소설 「나의 인생」과 「삼 년」을 한 권으로 묶은 소설집으로 두 남자의 두 가지 인생 여정을 체호프 특유의 절제된 문체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러시아어를 완역하여 국내에 첫 선을 보이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전 세계의 독자들로부터 깊은 공감과 사랑을 받고 있는 거장의 작품답게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인생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어 백 년이라는 시공간의 간극을 가뿐하게 메우기에 충분하다.

『나의 인생』은 타고난 신분과 배경을 버리고 ‘펜’ 대신 ‘페인트붓’을 붙잡은 한 남자의 인생 역정(「나의 인생」)과 결혼을 통해 일탈을 꿈꾸지만 녹록치 않은 삶의 진실을 깨닫게 되는 또 한 남자의 이야기(「삼 년」)가 수록되어 있다. 모순된 사회, 위선적인 인간 군상 속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으려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삶의 화두를 던진다. 특히 이 작품선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나의 인생」은 러시아 현대문학 비평가인 D. S. 미르스키가 “시적 파악과 의미 면에서 체호프의 걸작으로 인정될 만하다”라고 평한 바 있다.

청년실업과 구직난, 급증하는 이혼율, 사랑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 학벌을 갖고 연줄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현대인들의 아픔과 시련을 반추하게 하는 두 작품은 ‘노동’의 참 가치와 ‘결혼’의 참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독자들은 이 두 편의 소설을 통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롭고 중후한 느낌의 체호프를 만나게 될 것이다.

타고난 신분을 버리고 ‘펜’ 대신 ‘페인트붓’을 붙잡은 한 남자와
결혼으로 일탈을 꿈꾸다가 삶의 진실을 깨닫는 또 한 남자의 이야기

「나의 인생」의 주인공 미사일은 귀족 사회의 위선과 허울에 환멸을 느끼고 그 굴레를 박차고 나선 의지에 찬 젊은 남자이다. 대학을 졸업한 비슷한 처지의 젊은이들이 모두 넥타이를 매고 번쩍거리는 구두를 신고 사각의 책상 앞에 안주했지만, 미사일은 지적노동에 회의를 품고 육체노동자의 길을 걸어가리라 결심한다. 그는 주위의 편견과 질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펜’ 대신 ‘페인트붓’을 잡고 지붕과 벽을 칠하면서 무식하고 거칠지만 순수한 노동자의 삶 속으로 서서히 용해되어간다. 대학으로, 기업으로, 화이트칼라의 대열에 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현대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블루칼라의 노동자 미사일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동정과 탄식뿐이다.

소설의 인물들은 ‘아버지’로 상징되는 절대권력과 보수적 사회제도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깥’을 꿈꾼다. 아홉 번째 직장에서도 쫓겨나 계층사회의 무능력자로 아버지의 질타를 받던 주인공 미사일, 가계부 정리와 손님 접대가 인생의 전부이던 누이 클레오파트라, 항상 새로운 인생을 편력하는 아내 마리야 빅토로브나 등 모두가 기존의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일탈’의 꿈을 위해 속박의 가지를 쳐내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외쳐댄다.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보게 해준 아내, 그의 인생관에 동조하고 심지어 독려까지 했던 그녀가 떠나고 유일하게 의지하던 누이마저 사생아를 낳고 죽었지만 미사일의 삶에 대한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련을 거치면서 그는 점점 더 자유를 느끼게 되고, 자신이 선택한 삶과 세계, 곧 ‘나의 인생’에 편안히 안착하게 된다.

러시아의 현대문학 비평가이자 문학연구가인 D.S.미르스키는 이 작품을 체호프의 최고 작품 중 하나로 꼽으면서 “톨스토이의 맑고 지적인 문체에 접근한, 시적이고도 상징적인 걸작”이라 평했다.

「삼 년」의 라프쩨프와 율리야는 결혼을 통해 자신의 삶에 달라붙은 진부한 일상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얻으려 했던 ‘행복’은 결혼생활의 권태와 고독으로 좌절되고 만다. 쓸쓸한 성장기와 청년기의 음울한 반항을 모두 반납하고, 개선과 보상을 기대했던 결혼생활이었지만 미래에 대한 행복한 ‘환상’은 그저 신기루일 뿐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던 아내 율리야로부터 결혼 삼 년만에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라프쩨프의 가슴에는 이미 열정이 사라지고 없다. 앞마당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원의 검둥개처럼 결국 그도 자기 앞에 주어진 인생의 길을 무덤덤하게 걸어간다.

증오하던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가는 라프쩨프의 우울한 모습을 통해 체호프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운명의 굴레와 그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을 그렸다. 그러나 그의 시각은 ‘비관’이 아니라, 깊은 우수와 고통에 직면한 인간의 진중하고 엄숙한 ‘깨달음’이다.

마치 유행가의 한 구절 같은 “살다 보면 알겠지”는 「삼 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지문이다. 이 소설에 흐르는 체념적인 이미지는 이 마지막 독백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열등감과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삶을 꿈꾸었지만 돌아오는 건 실망과 회의, 이별과 죽음, 별 수 없는 체념뿐. 끝없는 목마름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시대와 역사만 다를 뿐 모두 같은 여정을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두 편의 소설 주인공들의 암울한 인생에서도 꺾이지 않는 의지와 소리 없는 절규는 독자들의 가슴을 때린다. 아마도 체호프의 작품이 지금까지 끊임없이 읽히는 이유는 그가 사람과 진리와 땀 흘리는 삶에 대한 애정을 북돋워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독자의 가슴속에 심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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